『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단순한 동화 각색을 넘어, 상상력과 철학, 시각적 판타지를 결합한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영화입니다. 본 글에서는 두 영화 속 ‘언더랜드(Underland)’, ‘거울나라’, 그리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현실과 판타지를 잇는 철학적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정리합니다. 판타지의 형태로 포장된 세계관 속에서, 영화는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을 은유합니다.
언더랜드 – 현실의 이면이자 무의식의 공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언더랜드(Underland)’는 원작 동화 속 ‘원더랜드(Wonderland)’를 보다 어두운 분위기로 재구성한 공간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이한 생명체들과 상상 속 구조물이 가득한 동화적 공간이지만, 실상은 현실에서 억압받은 감정과 욕망이 투사된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앨리스가 현실에서 결혼 압박과 사회적 틀 속에서 갈등하다 토끼굴을 따라 떨어지는 장면은, 명백한 ‘심리적 전환’을 상징합니다. 언더랜드는 기존의 질서가 뒤집힌 세계이며, 인간 본성의 다양한 양면을 가진 존재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자장수는 상실감과 순수성의 공존을, 붉은 여왕은 과도한 열등감과 권력욕을, 흰 여왕은 이상화된 이상주의를 각각 상징합니다.
언더랜드의 공간 구조는 비정형적이며, 명확한 동선이나 논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논리적 사고’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감성,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구성된 판타지 구조를 의미합니다. 앨리스가 이 공간을 통과하며 스스로의 두려움, 성장,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이 세계가 하나의 심리적 여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거울나라 – 시간과 기억의 왜곡 공간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훨씬 복합적입니다. 영화 초반, 앨리스는 거울을 통과하여 과거의 언더랜드로 이동하는데, 이 장치는 단순한 시간 여행을 넘어서 과거의 기억과 감정, 상처를 직면하는 심리적 기제로 기능합니다.
거울나라는 언더랜드의 또 다른 버전이자, 내면 깊숙한 층위에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크로노스피어’라는 시간 조작 장치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게 되며, 이를 통해 모자장수의 가족 비극, 붉은 여왕의 트라우마, 흰 여왕의 죄책감 등이 드러납니다. 이 모든 서사는 단순한 플롯을 넘어서 ‘과거의 기억과 화해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거울이라는 장치는 고전적으로 자아 반영, 이중성, 내면 탐색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앨리스가 거울을 통해 들어가는 장면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자기 내면의 과거와 대면하고 회복하는 여정으로 해석됩니다. 즉, 거울나라는 과거를 수정하려는 공간이 아니라,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현재를 바꾸는 힘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시간의 개념 – 존재, 성장, 회복의 철학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가장 독특한 세계관 요소는 바로 ‘시간(Time)’이라는 개념이 인격화된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시간은 단지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는 주체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인물은 냉정하면서도 공감력이 있으며, 앨리스의 과거 개입 시도를 견제하면서도 결국 그녀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크로노스피어라는 시간 장치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도구로 사용되며, 이를 통해 앨리스는 모자장수의 상처와 붉은 여왕의 변화를 목격합니다. 이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변화는 현재에서 만들어진다’는 메시지가 중심 테마로 제시됩니다.
시간의 개념은 또한 존재론적 의미를 가집니다. 모자장수는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잃어가고 있으며, 붉은 여왕은 과거의 억울함에 집착하여 현재를 파괴합니다. 앨리스는 이들 사이를 오가며 ‘현재를 살아내는 방법’을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자아와 타인, 현실과 환상 사이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팀 버튼은 ‘시간’을 단순히 스토리 장치로 쓰지 않고, 관객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로 확장합니다. 시간은 적도 친구도 아니며,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단순한 동화 각색이 아닌, 인간 내면의 여정과 현실 인식에 대한 은유적 판타지입니다. 언더랜드는 억압된 욕망과 감정의 세계이며, 거울나라는 기억과 화해의 공간, 그리고 시간은 존재를 형성하는 기준점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세 개의 주요 세계관 요소를 통해 ‘자기 이해’, ‘현실 수용’, ‘성장과 용기’를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앨리스의 여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내면의 세계로의 여행이며,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상상력의 장치입니다. 환상이 현실을 도피하는 통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도구임을 깨닫게 합니다.